한국사

한국사 조선시대 선조~효종 요점정리

study-on 2025. 2. 15. 18:54

1. 붕당의 형성

- 선조 때 사림들은 척신 정치의 청산 문제와 이조 전랑의 임명을 둘러싸고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었다.

- 이이와 성혼의 문인을 중심으로 형성된 서인은 척신 정치의 잔재 청산에 소극적이고 이조 전랑직과 관련하여 심의겸을 지지하였다.

- 조식과 이황의 문인을 중심으로 형성된 동인은 척신 정치의 잔재 청산에 적극적이고 이조 전랑직과 관련하여 김효원을 지지하였다.

- 정여립 모반 사건을 빌미로 서인들이 주도한 기축옥사에서 동인들이 피해를 받았다.

- 선조 때 서인 정철이 세자 책봉을 건의한 건저의 사건으로 서인은 정치적 입지가 약화되었다.

- 선조 때 동인은 기축옥사를 주도한 정철의 처벌 문제로 온건파인 남인과 강경파인 북인으로 나뉘게 되었다.

 

2. 임진왜란

- 왜군이 부산포에 침입하자 관군은 부산진성과 동래성에서 항전하였다.

- 신립이 충주 탄금대에 배수진을 치고 항전하였다.

- 한양과 평양이 차례로 함락되자 선조는 의주로 피난하였다.

- 이순신이 이끄는 수군이 한산도에서 왜의 수군을 대파하였다.

- 김시민이 이끄는 조선군이 진주성에서 왜군을 대파하였다.

- 조명 연합군이 평양성을 탈환하였다.

- 권율이 이끄는 조선군이 행주산성에서 왜군을 대파하였다.

- 고경명, 조헌, 영규 등은 금산에서 의병을 이끌고 활약하였다.

- 일본과의 휴전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중앙군이 훈련도감과 지방군인 속오군이 설치되었다.

-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이순신이 이끄는 수군이 명량해전과 노량해전에서 왜의 수군을 대파하였다.

- 임진왜란 후 승병장으로 활동했던 유정이 회답 겸 쇄환사로 일본에 파견되었다.

 

3. 광해군

정치 - 계축옥사 > 인목대비 유폐, 영창대군 살해
- 인조반정 > 인조 옹립 > 광해군은 제주도에 유배
외교 - 일본과 기유약조 체결 > 일본과 무역 재개, 부산포 개항
- 명과 후금 사이에서 중립 외교 추진 > 강홍립 파견 > 후금에 투항
경제 - 대동법 시행 > 공납의 기준을 토지 결수로 정함
- 전후 복구를 위해 양전 사업, 호적 조사 사업 실시
문화 - 허준: 중국과 우리나라 의서 집대성한 동의보감 간행

 

4. 인조

이괄의 난 - 배경: 인조반정 이후 공신 책봉에 대한 반발
- 전개: 평안병사 이괄이 난을 일으킴 > 인조는 공주 공산성으로 피난
- 결과: 일부 잔당 후금에 투항 > 인조반정의 부당성 호소 > 조선을 칠 것을 종용
정묘호란 - 배경: 서인들의 친명배금 정책
- 전개: 후금 군사 3만여 명 조선 침략 > 인조 강화도로 피난
- 의병: 의병 정봉수의 용골산성 항전
- 결과: 후금과 형제 관계 체결
병자호란 - 배경: 후금이 청으로 국호 변경 > 군신관계 요구

- 전개: 조선은 주전론과 주화론으로 대립
> 청 태종의 침입
> 관군 임경업의 의주 백마산성 항전
> 김상용, 종묘의 신위를 모시고 강화도로 피난 후 순절
>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난해 항전
> 김준룡, 근왕병을 이끌고 광교산 전투에서 승리
> 인조는 삼전도에서 항복 의식을 거행

- 결과: 청의 군신 관계 요구 수용, 인질로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끌려감

 

5. 효종

북벌 추진 - 병자호란 때 청에 당한 수모에 대한 보복
> 송시열(기축봉사를 올림) 등의 서인이 주도
> 어영청 강화, 조총 부대 육성
나선 정벌 - 연해주 방면으로 남하하는 러시아를 대응하기 위해 청이 파병 요청
> 두 차례에 걸쳐 조총 부대 파견

[참고 자료]

https://www.cosmoshistory.com/main.html